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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중산학교

1882year
1882년 이후 화교는 계속 증가하지만 한국에서 생활 기반을 잡은 사람들에게 자녀교육은 쉽지가 않았다. 일부는 본국으로 보내어 학교에 보내거나, 아니면 가정에서 천자문이나 사자경등을 공부하는 정도였다. 인천 화교학교는 1902년 5월 인천중화상무 총회(현 인천화교협회) 건물의 창고 한 칸을 내어 사숙방식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교장은 부영사관이었다.
1913year
“자강소학”이라는 교명으로 주로 광동지역학생을 상대로 하는 학교가 세워졌으나 후에 화교소학교에 편입된다. 당시 학교는 7년제로서 인천 지역의 학생 외에도 전국에서 입학한 학생들이 기숙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1929year
1929년에는 북방인(주로 산동인)들이 산동동향인회관(현 파라다이스 호텔자리)에 노교화교소학(魯僑華僑小學)을 세우나 5~6년 후에 다시 화교학교로 합쳐진다.
1946year
1942년에는 학생수가 수백명에 이르러 2층 건물을 신축하여 1층은 교실로,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며 1946년에는 주안에, 1951년에는 용현동과 부평에 분교를 설치하게 된다.이때까지도 인천에는 소학교 과정만 있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서울의 한성화교중학등으로 통학을 하였기에 불편이 많았다.
1957year
9월1일 이사회를 거쳐 중고등학교 과정을 신설하고, 학교명을 한국인천중산소학 ,중산중학으로 바꾼다. 중산(中山)이란 중국인들이 국부로 생각하는 손문선생의 호로서 학술방면의 공헌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라고 한다.
  • 화교학교 사진
  • 화교학교 사진
  • 화교학교 사진
  • 화교학교 사진

수차에 걸쳐 건축과 소실을 겪은 학교 교사는 1951년 지어진 소학교 건물과 1977년에 현재 중학 건물을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때는 천오백여명이 북적대던 학생수는 현재 약 사백오십명, 그중 한국 학생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 온 자녀들도 섞여서 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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